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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물리학의 표준모형

뉴턴이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 받는 이유는 그가 보편적인 중력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중력법칙에는 만유인력의 법칙(universal law of gravitatio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만유인력이 있는데, 이는 각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만유인력의 내용을 다들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지만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17세기에는 사정이 달랐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것과 똑같은 힘이 지상의 모든 물체에도 작용하며 더 나아가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같은 힘의 지배를 받는다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자연현상은 복잡해도 그 내면의 근본원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두루두루 적용되는 보편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과학자들은 한두 가지의 보편적인 원리로 수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것이 과학을 하는 최고의 보람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현상들마다 제각각 적용되는 작동원리를 과학자들이 보편법칙이라고 내놓는다면 무척 실망스러울 것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열망은 일종의 본능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이 본능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말년의 그는 통합이론(대통일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아인슈타인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보편적 진리를 추구했던 그의 열정과 노력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면면히 이어졌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자연계의 힘은 네 가지이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그들이다. 현대적인 이론에서는 이 네 가지 힘에는 각각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중력자(중력), 광자(전자기력), W 및 Z(약력), 접착자(강력)가 그들이다. 한편 자연계에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 외에 물질을 구성하는 구성입자들이 있다. 전자나 양성자 등이 이에 속한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즉, 물체가 지구로 떨어지게 만드는 가장 친숙한 힘이다. 뉴턴이 중력을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정식화했고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현대화했다. 전자기력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함께 일컫는다. 전자기력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전기력과 자기력이 하나의 힘이라는 사실은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전자기유도현상을 발견함으로써 확실해졌다. 전자기력은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에 이르러 그의 유명한 방정식으로 총정리 되었다. 약력과 강력은 원자핵을 발견한 뒤 그 성질들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힘이다.


 

 

약력(약한 핵력, 혹은 약한 상호작용)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베타붕괴라 는 현상 덕분이었다. 베타붕괴는 중성자가 전자를 방출하면서 양성자로 바뀌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전에는 알지 못하던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힘을 연구해보니 이 힘은 중력보다는 강하지만, 전자기력보다는 약했다. 그래서 약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성자가 붕괴할 때는 아주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원래 중성자가 가졌던 에너지와 베타 붕괴 이후에 전자와 양성자가 가지는 에너지가 서로 다르다. 즉,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 보존법칙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볼프강 파울리이다. 볼프강 파울리는 질량이 거의 없고 전기적으로 중성인 입자가 이 반응에 참가하여 에너지를 가지고 달아난다면 에너지 보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기적으로 중성이면서 매우 가벼운 이 입자를 중성미자(neutrino)라고 한다. 중성미자는 약력에만 관여하는 입자이다.

 

 

강 력(강한 핵력, 혹은 강한 상호작용)을 발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수소 이외의 원자핵은 두 개 이상의 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양성자는 모두 전기적으로 양성이라 양성자가 여럿 모여 있으면 전기적인 반발력이 대단할 것으로 쉽게 예상된다. 따라서 전자기력보다는 훨씬 강한 힘으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줄 힘이 필요하다. 전자기력은 약력이나 중력 보다 센 힘이니, 전자기력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력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는 양성자나 중성자들이 중간자(meson)라는 새로운 입자들을 교환하면서 강력을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예언대로 파이온(pion)이라는 중간자가 1947년 발견되었다. 즉, 강력은 새로운 힘이고, 전자기력 보다 강한 힘이며, 중간자가 관여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중성자와 양성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기본 소립자는 아니다. 이후 양성자나 중성자가 쿼크(quark)라는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쿼크는 머리 겔만(Murray Gell-Mann)과 츠바이히(George Zweig)가 1963년 독립적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쿼크 셋이 적당히 잘 모이면 양성자나 중성자가 된다. 또한 강력에 관여하는 중간자도 쿼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양성자나 중성자, 중간자는 모두 강력과 관계가 있다.

 

더 연구를 진행해 본 결과 쿼크는 강력을 느끼는 최소 입자 단위이고, 쿼크와 쿼크는 접착자(gluon)라고 불리는 강력의 매개체를 주고받으며 강하게 결합해서 양성자나 중간자를 만든다는 것이 알려졌다. 쿼크는 총 6종이 있다고 밝혀졌다. 6종류의 쿼크는 2가지씩 짝을 이룬다. 그 이름은 업(Up)/다운(Down), 참(Charm)/스트레인지(Strange), 톱(Top)/보텀(Bottom)이다.

 

 

양성자, 중성자가 강력으로 뭉쳐져서 원자핵을 만든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면 전자들도 뭉쳐질 수 있을까? 강력은 전자기력보다 강하므로 전자들 사이에도 강력이 작용할 수 있다면 전자들도 여러 개 뭉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전자는 강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자와 중성미자는 약력에는 반응을 하는데, 강력은 느끼지 못한다. 이런 입자들을 경입자라 고 한다. 경입자는 강력을 느끼는 쿼크와는 전혀 종류가 다른 입자인 셈이다. 경입자도 총 6종이 발견되었다. 처음에 발견된 중성미자는 약력과 반응할 때 전자와 관련되기 때문에 전자형 중성미자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뮤온(muon)이라는 경입자에는 뮤온형 중성미자가 있고, 타우온(tauon)이라는 경입자에는 타우온형 중성미자라는 것이 있다. 전자와 뮤온 혹은 타우온은 질량만 다를 뿐 그 외 모든 물리적 성질은 똑같다. 말하자면 전자의 형제뻘 되는 입자들이다. 그 각각의 짝을 이루는 중성미자들도 서로 형제뻘이다. 약력은 W, Z로 불리는 입자들이 매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연계의 소립자는 크게 힘을 매개하는 입자와 물질을 구성하는 구성입자로 나뉜다. 구성입자는 다시 강력을 느끼는 쿼크와 강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입자로 구분된다.

 

 

자 연에는 왜 네 개나 되는 힘이 존재하는 것일까? 초등학생이 던질 법한 이 질문에 아직 우리는 만족할만한 답이 없다. 아마 이 질문은 21세기에도 과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자연의 근본이치를 묻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네 개의 힘이 별개로 존재한다기보다 하나의 통합된 힘이 네 개로 갈라졌다는 스토리를 더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곧 과학자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통합을 향한 큰 진전이 이뤄진 것은 1960년대였다. 미국의 셸던 글래쇼(Sheldon Glashow)와 파키스탄의 압두스 살람(Abdus Salam),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가 그 주역들이었다. 이들의 이름을 딴 GSW 모형은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론이 강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미국 듀크 대학 교수인 한무영 박사가 지난 2008년 노벨상 수상자인 난부 요이치로와 함께 이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다.

 

 

약력과 전자기력, 그리고 강력에 대한 이런 이론들을 한데 모아 사람들은 표준모형이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표준모형은 강력을 느끼지 못하는 세 쌍의 경입자들과 강력도 함께 느끼는 세 쌍의 쿼크들, 그리고 세 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에 관한 이론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표준모형은 다양한 실험적 검증을 통해 가장 믿을 만한 이론적 체계로서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인류 태고의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이 바로 표준모형이다. 그러나 표준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입자가 아직 실험적으로 발견되지 않고 있어 많은 과학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그것은 바로 힉스(Higgs) 입자이다. 힉스는 표준모형의 가장 핵심적인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힉스가 없으면 표준모형은 한마디로 ‘대략 난감’의 상태에 빠진다. 그 난감한 상황이란 무엇일까? 왜 힉스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자연의 뒷면에 감춰진 놀라운 비밀과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지식iN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20



초대칭

세계 피겨스케이팅을 주름잡고 있는 국민요정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저렇게 높이 점프하면서 어쩜 그렇게 순식간에 세 바퀴나 돌고 사뿐히 착지할 수 있을까? 물리 이론적으로 보자면 피겨 선수의 점프 회전이 불가사의한 현상은 결코 아니다. 회전하는 물체는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이라는 물리량을 갖는다. 어떤 물체가 회전할 때의 각운동량은 그 물체의 질량과 선속도와 회전반경의 곱으로 주어진다. 지구나 인체처럼 수많은 입자들이 모인 물체가 회전할 때는 그 모든 입자들의 효과를 죄다 더해야 한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회전하는 물체의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이것을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각운동량은 기본적으로 질량과 선속도와 회전반경의 곱이니까, 각운동량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예컨대 회전반경이 짧아지면 선속도가 높아져야만 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할 때도 지구의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그래서 태양에 근접할 때는 (북반구의 겨울) 공전속도가 빨라지고 멀어질 때는 (북반구의 여름) 속도가 느려진다. 이것이 케플러의 행성운동에 관한 제2법칙으로서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김연아 선수가 3회전 점프를 할 때도 김연아 선수의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도약을 하면서 자기 몸에 회전을 걸 때 자신의 팔을 몸에 바짝 붙이면 회전반경이 짧아지는 효과가 생기므로 몸 전체의 회전 선속도는 높아진다. 그 결과 순식간에 3회전을 돌게 된다. 반대로 착지할 때는 팔을 쭉 뻗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야만 몸의 회전 선속도가 그만큼 느려져서 착지한 다음 균형을 잡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설명하기야 이렇게 쉽지만 그 상황을 실제 빙판에서 재현하기란 무척 어렵다. 김연아 선수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상황을 실제로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니까 ‘예술적’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서는 거시세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현상들이 많이 생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질의 기본단위를 이루는 소립자들은 스핀(spin) 이라는 물리량을 가진다. 스핀은 각운동량의 일종이다. 스핀은 스스로 돈다는 의미가 있지만 소립자들은 크기나 부피가 없는 점입자(point particle)로 간주되기 때문에 실제 소립자가 회전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스핀은 질량이나 전기 전하량처럼 소립자가 내재적으로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회전효과이다. 양 자역학에서는 물리량들이 덩어리져서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각운동량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립자들이 가질 수 있는 스핀값은 0, 1, 2, 같은 정수값이거나 1/2, 3/2, 등과 같은 반(半)정수값 두 가지 뿐이다. 전자의 스핀값을 가지는 소립자를 보존(boson)이라 하고 후자의 스핀값을 가지는 소립자를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한다.

 

 


보존은 여러 개의 입자가 같은 물리적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반면에 페르미온은 같은 상태에 둘 이상의 입자가 있을 수 없다. (배타원리) 여러 개의 페르미온이 있으면 각 페르미온은 각기 서로 다른 상태를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이 때문에 페르미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전 자나 양성자는 모두 페르미온으로서 이들의 스핀값은 1/2이다. 반면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은 모두 보존으로서 빛(광자)이 대표적인 예다. ‘신의 입자’로 불리며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는 스핀이 0인 보존이다. 자연계의 모든 소립자는 보존 아니면 페르미온이다. 이는 마치 자연에 남자와 여자 두 종류의 성이 있는 것과도 같다.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것은 성염색체로서 남자는 XY, 여자는 XX의 성염색체를 가진다. 굳이 말하자면 남자는 혼자서 독립하기를 좋아하니까 페르미온, 여자는 상대적으로 서로 붙어 다니길 좋아하니까 보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초대칭성(supersymmetry) 이란 보존과 페르미온 사이의 대칭성이다. 만약 자연계에 초대칭성이 있다면 모든 보존은 각각 자신의 초짝(super partner)으로서 페르미온을 하나씩 동반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페르미온도 각각의 초짝으로서 보존을 하나씩 가진다. 말하자면, 이 세상 모든 남자와 여자가 각기 자신의 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초대칭성은 1971년 구 소련의 골판드(Y. Golfand)와 리크트만(E. P. Likhtman)이 수학적으로 처음 도입하였다. 같은 해에 라몽(P. Ramond)과 느뵈(Neveu) 및 슈바르츠(Schwarz)도 독립적으로 초대칭성을 도입하였다. 라몽과 느뵈와 슈바르츠는 당시 끈이론(string theory)을 연구하다가 초대칭성을 발견하였다. 초대칭성이 있는 끈이론을 초끈(superstring)이론이라고 한다.

 

남 자만 있는 군대는 삭막하다. 여자만 있는 여대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하는 게 자연의 정한 이치다. 남녀가 골고루 섞여 있어야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친다. 남녀가 제각각 자기 짝을 찾아 조화롭게 살고 있으면 우리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 립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초대칭성은 미학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보존이 있으면 페르미온이 있어야 하고, 페르미온이 있으면 보존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입자의 존재에 대한 필연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표준모형에서는 힉스 보존처럼 스핀이 0인 입자가 꼭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론 내적으로 찾기가 어렵다. 왜 스핀이 0인 입자가 자연에 있어야만 할까? 초대칭성은 이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한다.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 있으면 그 초대칭짝은 스핀이 0인 입자이기 때문이다.

 

 

초대칭성은 표준모형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 초대칭성이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 질량에 대한 미세조정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의 미세조정의 문제는 지난 글에 서도 설명한 적이 있다. 요지만 설명 하면 이렇다. 힉스 입자는 애초에 천문학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는데, 입자가 순간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될 때 발생하는 효과가 그 질량을 상쇄하여 양성자의 수백 배의 질량으로 관측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상쇄되어 나타나는 효과의 정밀도는 1/1032이다. 이 미세조정의 문제는 많은 과학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 초대칭성이 있으면 이렇게 어색한 미세조정이 전혀 필요 없다. 표준 모형에서 힉스입자의 원래 질량이 천문학적으로 커야 되는 이유는 주로 톱쿼크와 힉스와의 반응 때문이다. 그런데, 초대칭성이 있다면 톱쿼크에도 그 초짝인 스톱(stop, scalar top의 약자)입자라는 것이 있게 된다. 그 스톱입자가 존재하면 스톱입자와 힉스와의 반응이 톱쿼크와 힉스입자와의 반응에 의한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힉스 입자의 질량이 원래 천문학적으로 큰 데, 입자들과의 반응을 통해 절묘하게 조정된다는 믿기 힘든 설명은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초대칭성은 암흑물질(dark matter) 문제에도 제격이다. 암흑물질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표준모형의 패러다임에서는 암흑물질의 후보가 전혀 없다. 그러나 표준모형에 대해 초대칭적인 입자, 즉 초입자(super particle)가 있다면 그 가운데 가장 가벼운 입자가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은 초입자들 중에서 초중성소자(neutralino)를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실험적으로 우리는 아직까지 초입자를 본 적이 없다. 자연의 초대칭성이 정확하다면 서로 초짝을 이루는 보존과 페르미온의 모든 물리적인 성질(스핀만 제외하고)이 똑같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전자의 초짝은 전자와 질량이 같기 때문에 여태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초대칭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과학자들 은 자연에 초대칭성이 있더라도 그것이 적절하게 깨져 있으면 초입자들의 질량이 충분히 커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소립자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발견하기 어렵다. 질량이 큰 입자는 생성되는데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힉스 보존의 질량을 자연스럽게 안정시키려면 초입자들의 질량은 대략 양성자 질량의 약 1천 배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면 유럽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다. 과학자들의 예상이 맞다면 1년에 대략 수만 개의 초입자가 LHC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여태 숨겨져 있던 자연의 또 다른 반쪽을 인류가 마침내 들춰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77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대형강입자충돌기 - 신의 입자를 때려라.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 대학에서 파도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설적인 일화에 의하면 1년 전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그 유명한 낙하실험을 했다. 여느 전설과 마찬가지로 피사의 일화에는 거짓과 과장이 섞여 있다. 실제로 갈릴레이가 피사의 탑에서 낙하실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화는 갈릴레이에게 근대과학의 아버지라는 심상을 굳혀 주었다.

 

 

갈릴레이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이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을 받고 나서 중얼거렸다고 널리 알려진 말이다. 갈릴레이가 이 말을 실제로 했는지는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갈릴레이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망원경 덕분이었다. 갈릴레이는 이 8배율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변 화를 관찰하여 지동설을 강력하게 지지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일이다. 갈릴레이 이래로 망원경은 천체를 관측하는 가장 중요한 기구였고 이것은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실이다. 망원경 뿐만 아니라 인간은 유사 이래 수많은 관측 장비를 발전시켜왔다. 이런 장비들은 인간의 제한된 오감을 극적으로 넓혀 천상의 비밀과 자연의 근본원리를 우리가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맨눈으로든 망원경을 통해서든 우리가 사물을 눈으로 본다는 것은 대상물에서 튕겨 나오는 빛을 시신경이 감지하여 뇌가 종합적인 영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과 대상물의 충돌이다. 충돌은 가장 단순한 물리적 상호작용의 한 형태이다. 시각에 익숙한 우리는 사물을 ‘그냥’ 볼 뿐이지만 시각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빛 말고 다른 종류의 충돌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의 지팡이는 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이분들은 지팡이를 주변에 두들겨 손끝으로 전해오는 정보를 종합해서 사물을 ‘본다.’ 박쥐 같은 동물들은 초음파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깟 신호들이 얼마나 유용할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초음파로 찍은 태아의 영상을 보면 자신의 생각을 아마 바꿀 것이다. 빛이 제 역할을 못하는 바다 속에서 잠수함을 찾으려면 소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배나 비행기를 보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쏘아 대상물과의 충돌을 기대한다.

 

 

과학자들이 원자 단위 이하의 세계를 관측할 때에도 충돌이 필수적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소립자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거기에다 뭔가를 두들겨 봐야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만든 기계가 바로 ‘충돌기(collider)’이다.

 

지난 2008년 9월10일 공식 가동에 들어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는 미시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의 결정판이다. 강입자(hadron)란 강한 핵력으 로 뭉쳐진 입자들을 일컫는다. LHC는 말하자면 갈릴레이의 망원경 이래로 인간이 자연의 근본원리를 탐색하기 위해 건설한 사상 최대의 과학 설비이다. 원자 이하의 세계를 관찰하는 일종의 현미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시세계를 탐험하는 이 현미경은 그 둘레가 무려 27km에 이른다.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려면 그 사물에 충돌하는 빛이 있어야 한다.  LHC는 빛 대신 주로 원자핵을 이루는 입자인 양성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가 LHC를 이용해서 보고 싶은 것은 양성자 안에 들어 있다. 즉, 양성자 보다 훨씬 작은 소립자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LHC에서는 양성자와 양성자를 정면 충돌 시킨 후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본다. LHC에서 양성자들은 엄청나게 세게 충돌한다. 물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충돌의 에너지가 크다. 이 충돌 에너지 때문에 양성자는 그 구성 성분들인 쿼크(quark)나 접착자(gluon, 강한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로서 쿼크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들로 부서진다. 충돌에너지가 커질수록 양성자를 깨뜨려 그 안의 소립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도 커진다. 높은 에너지의 소립자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여태 보지 못했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현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는 마치 망원경의 해상도가 좋아져서 예전에 흐릿하게 보이던 상을 매우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높은 해상도는 높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과학자들이 LHC에 큰 기대를 가진 이유는 이 기계가 전대미문의 에너지로 양성자를 충돌시키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 = mc2) 덕분에 에너지는 항상 질량과 등가의 관계에 있다. LHC 이전의 최대 설비였던 미국의 테바트론(Tevatron) 은 양성자를 자기 질량의 약 1천배 정도 되는 에너지로 충돌시켰다. LHC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속하는 양성자가 각각 자기 질량의 7천배나 되는 에너지로 충돌하기 때문에 전체 충돌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1만 4천 배에 이른다. 이 정도의 에너지면 양성자를 깨뜨림은 물론 그 안의 소립자들에게 양성자 질량의 1천 배가 넘는 에너지를 안길 수 있다. 과학자들은 오랜 세월 연구를 통해 소립자들이 양성자 질량의 1천 배가 넘는 에너지로 충돌하면 소립자 물리학의 신세계를 열어 주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에너지는 빅뱅 직후 약 1천억 분의 1초가 지난 우주의 에너지와도 같다. 그러니까 LHC는 여지껏 흐릿하게 가려져 있었던 우주의 과거를 보다 높은 해상도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망원경이다.

 

 


LHC 는 27km의 양성자 빔라인(beam line)을 따라 곳곳에 양성자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충돌지점에는 엄청난 크기의 입자검출기가 설치되어 양성자가 정면충돌한 결과 어떤 입자들이 어떻게 새로이 생겨났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검출기는 우리의 눈과도 같다. LHC에는 총 6개의 검출기가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ATLAS(A Toroidal LHC Apparatus)와 CMS(Compact Muon Solenoid)가 다목적의 대규모 검출기이다. ATLAS는 길이가 46m, 높이 25m에 무게는 7천톤이다. CMS는 ATLAS보다 약간 작지만 무게는 두 배 가까이 더 무겁다. 물론 ATLAS는 지금까지 만든 입자검출기 중에서 가장 크다.  ATLAS는 초당 320MB, CMS는 초당 220MB의 실험데이터를 양산한다. 이 데이터들은 복잡하게 얽인 회로(마치 인체의 시신경과도 같다)를 통해 컴퓨터로 처리된다.

 

 

LHC 같은 충돌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충돌하는 빔의 밝기(luminosity)이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빔의 밝기는 매초마다 가로 세로 1cm의 넓이를 지나가는 양성자의 개수이다. LHC의 빔 밝기는 1034(1조의 1조의 100억 배)로서 사상 최대다. 반면, 과학자들이 LHC의 실험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소립자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확률은 굉장히 낮다.

 

LHC의 실험을 비유하자면 얼추 다음과 같다. 지름이 1광년(=10조km)인 거대한 원판에다 대고 다트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LHC라는 선수는 지금 이 원판에 초당 1034개 의 다트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원하는 목표 지점은 이 거대한 원판에서 겨우 지름이 1cm 혹은 그 이하인 원에 불과하다. 언뜻 보기에 이 게임은 LHC에 무척 불리해 보인다. 사실 LHC 이전의 선수들은 힘(=에너지)이 약해서 다트를 원판에 꽂힐 만큼 세게 던지지도 못했다. LHC에 이르러서야 이제 겨우 확실히 원판에 다트가 꽂힐 만큼의 에너지(양성자 질량의 1만 4천 배)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LHC는 손놀림도 무척 빨라 초당 던질 수 있는 다트의 개수도 많아졌다. 낮은 확률을 높은 시행횟수로 커버하는 셈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횟수는 그 일이 일어날 확률과 시행횟수의 곱으로 주어진다. 예컨대 로또 당첨 확률(약 840만 분의 1)은 매우 낮지만, 매주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오는 것은 시행횟수가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LHC 는 이 게임에서 산술적으로 약 100초에 한번 꼴로 지름 1cm의 목표물을 맞힐 수 있다. 이 게임을 1년(약 3천만 초)간 계속하면 30만 번 정도는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실제 과학자들은 입자물리학의 새 장을 열어 줄 신의 입자(힉스 입자)나 초대칭(supersymmetry) 입자를 운이 좋다면 연간 수천 내지 수만 개 정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LHC의 실험은 인류 지성의 역사의 최대의 빅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관련글 :  신의 입자를 찾아서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77

신의 입자를 찾아서 - 유리컵 속의 히든카드

“우 리 앞에 가로놓인 유리장벽은 너무나 두껍고도 무겁다. 그 한가운데, 우리가 아직 근접할 수 없는 곳에 표준모형의 마지막 패가 하나 엎어져 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그 패가 ‘신(神)의 입자(God Particle)’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의 입자는 표준모형에서 발견되지 않은 최후의 소립자인 힉스(Higgs) 입자이다.”

 

 

영화 <타짜> 의 클라이막스. 아귀는 곤이가 ‘구라’를 쳤다며 곤이의 손목을 잡아 비튼다. 곤이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결백을 주장하며 문제의 화투패를 유리컵으로 덮는다. 곤이는 엎어진 패가 단풍이 아니라는 데에, 아귀는 그 패가 단풍이라는 데에 각자의 모든 돈과 각자의 ‘손모가지’를 걸었다. 둘의 손목은 바둑판 위에 묶였고, 이제 유리컵 속의 화투패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자, 결과는?

 

 

영화든 소설이든 스토리의 숨통에 가로놓인 히든카드는 보는 이의 손을 땀으로 적신다. 걸린 판돈이 클수록 긴장감은 그만큼 커진다. 시종 굳은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정마담이 실제 영화와는 달리 생글생글 웃으며 “난 곤이에게 1억 걸겠어요.”라고 했다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2009년을 맞이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심정은 자신의 손모가지를 묶어 놓고 유리컵 안에 뒤엎어진 화투패를 노려보는 곤이나 아귀의 심정과 똑같다. 기원전 600년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선언한 이래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더 이상 근원적일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 막 펴 보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수 천 년의 기다림... 때론 암흑기도 있었지만 현대과학의 눈부신 성공은 20세기에도 혁혁한 전과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과학자들은 그 수천 년 묵은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가로놓인 유리장벽은 너무나 두껍고도 무겁다. 그 한가운데 우리가 아직 근접할 수 없는 곳에 표준모형의 마지막 패가 하나 엎어져 있다. 이 유리벽 속에 있는 것이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 나올 법한 성배는 아니지만, 그 뒤집어진 패에는 성배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가 담겨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기본질서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흔히 호사가들 사이에서 이처럼 성배 찾기나 신에 대한 도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수사()는 스피노자범신론을 신봉했던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의 언명과 뒤섞이면 그 위력이 더 커진다. 실제로 아인슈타인 자신은 “신의 마음을 알고 싶을 뿐”이라거나 “신은 주사위 놀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에 반대하며 했던 말)는 등의 명언을 남겼다. 때로는 이런 말들이 과학의 임무와 종교적 목적 사이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표준모형을 구축했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말마따나 “자연의 최종법칙들을 신의 마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은유이다.” 신의 마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은유인 까닭은, 과학이 지금까지 인간 지성과 인류문명의 최첨단에서 그 경계를 넓혀 온 덕분에 그 바깥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자에게 가장 강력한 위협이 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두터운 유리장벽 속에 뒤집어져 있는 표준모형의 마지막 패는 ‘참을 수 없는 은유’의 절정이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그 패가 '신(神)의 입자(God Particle)’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의 입자 는 표준모형에서 발견되지 않은 최후의 소립자인 힉스(Higgs) 입자의 별칭이다. 힉스 입자 는 다른 모든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면 현대과학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미스터리가 신의 입자라니, 수백 년 동안 종교의 대척점에 서 왔던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신의 입자라는 작명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신의 입자라는 말은 새로운 종류의 중성미자를 발견한 공로로 1988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Leon Lederman)이 1993년 <신의 입자 (God Particle)>라는 책을 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원래 레더만이 원했던 제목은 <빌어먹을 입자 (Goddamn Particle)>였다. 그만큼 힉스 입자를 실험적으로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내는 발행인으로서는 도저히 이런 제목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빌어먹을 입자를 졸지에 신의 입자로 둔갑시켜 버렸다. 물론 신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면 판매량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그러나 모든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그 발행인의 기지가 전혀 엉뚱했던 것만 같지는 않다.

 

 


안타깝게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정황과 간접적인 증거로 인한 믿음만 있을 뿐 누구도 아직 이 패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앞을 가로막는 유리벽을 깨뜨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 왔다. 그 시도 가운데 가장 담대했던 계획은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있었다. 미국 과학계는 초전도초대형충돌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라는 원형 입자가속기 건설을 추진했다. SSC는 그 둘레만 84km에 이른다. 이는 서울 지하철 2호선(약 45km)의 두 배 가까운 크기다. 예산도 슈퍼헤비급이라 당시 가격으로 약 8조원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SSC와 관련된 수많은 과학자들은 수시로 워싱턴을 드나들며 의회를 설득했다. 아직 살아있는 과학자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스티븐 와인버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와인버그는 1987년 과학, 우주 및 기술에 관한 의회 위원회에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자연의 보편법칙들을 발견하는지, 그 법칙들이 왜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 그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주의 구조 속에 구축된 심오한 뭔가를 반영하는지를 증언했다. 와인버그는 SSC가 이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와인버그의 증언 이후, SSC를 지지하는 해리스 파월 의원과 반대하는 돈 리터 의원의 대화가 이어졌다. 파월은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께서는 물질을 지배하는 규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런데 그 때문에 우리가 신(神)을 발견하게 될까요? 확실히 박사님은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히 우리가 우주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리터는 파월과 약간의 실랑이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이 기계가 그런 일을 한다면 저는 입장을 바꿔 (SSC 건설을) 지지할까 합니다.”

 

와인버그는 그 자신은 대단한 무신론자였지만 이들의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신념과 다른 사람들의 신앙적 믿음 사이를 오가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냈다. 마음을 바꾸었다는 리터 의원이 정말로 SSC가 신의 존재를 직접 증명해 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SSC가 인간지성의 가장자리에서 그 경계를 한 발짝 넓힐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 같다.

 

 

한동안 SSC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회에서 실제 건설에 필요한 예산이 집행되었고 지하터널도 파기 시작했고 일부 설비들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SSC는 의회에서 해마다 그 타당성과 경제성 논란에 휘말렸다. 레이건 시절의 전략방위구상(SDI) 등과 함께 냉전시대의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의 대표주자로 지목되어 반대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게다가 새롭게 들어선 클린턴 1기 행정부는 이전의 레이건이나 부시 행정부보다 미온적이었다. 결국 미국 과학자들의 야심 찬 계획은 1993년 수포로 돌아갔다. 미 하원이 그 해 10월 SSC와 관련된 예산을 최종적으로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약 20억 달러나 예산이 집행된 뒤였다. 지난 2007년 와인버그의 저서 <최종이론의 꿈>을 번역한 것을 계기로 그를 직접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부 통령이었던 앨 고어는 저에게 클린턴 행정부가 SSC를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도 않았어요. 물론 그 계획을 죽여 버린 것은 민주당이 지배하던 의회, 특히 하원이었습니다.” 24km나 파다 만 터널은 한때 버섯 등을 키우는 자연학습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SSC의 역할은 지금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가 이어받았다. LHC는 2008년 9월10일 공식 가동에 들어갔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SSC의 핵심적인 임무는 여전히 성취되지 않고 LHC로 이어졌다. 그 임무란 바로 표준모형의 마지막 패를 펴 보는 것이다. LHC는 설비의 규모와 가속되는 입자의 에너지 면에서 SSC보다 못하지만 숨겨진 패를 가로막은 유리 벽은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 14년에 걸쳐 약 10조원의 돈과 함께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의 땀방울이 필요했다. 패 하나 보는 가격 치고는 꽤나 비싼 편이다. (물론 LHC의 임무가 이 뿐인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LHC는 지금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가동이 잠깐 중단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연속된 불행의 늪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드디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의 히든카드를 엿보게 될 것이다.

 

 

40년에 걸쳐 10조원을 훨씬 웃도는 판돈이 들어간 이 게임에는 영화<타짜>에서와는 달리 패의 결과를 놓고 베팅을 하는 구경꾼들도 꽤 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LHC가 신의 입자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100달러를 걸었다. LHC가 기술적으로 신의 입자를 찾기에 충분하지만 그런 기계가 신의 입자를 찾지 못한다면 “훨씬 더 신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 론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그와 반대로 베팅한다. 설령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바로 그 입자가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소립자들이 질량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힉스 입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힉스 비슷한 입자가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을 이어 내려 온 우주의 비밀이 40년도 넘는 예측과 준비,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요하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곧 밝혀지려 하고 있다. 이번 연재는 여러분들이 이 세기의 빅 이벤트에서 어디에다 베팅을 할 것인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한 안내서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어디에 얼마를 걸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