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양자역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양자역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슈뢰딩거 방정식

뉴턴역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식은 뉴턴의 F=ma라는 식으로 나타내지는 운동 방정식이다. 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많은 식들이 등장하지만 이러한 식들은 모두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서 유도된 것들이다. 전자기학에서는 네 개의 방정식으로 나타내지는 맥스웰 방정식이 중심이 되는 식이다. 양자화 되어 있는 물리량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에도 이 식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방정식이 있다. 이 식이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따라서 양자물리학 이야기에서 슈뢰딩거 방정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뉴턴 역학에 운동방정식이 있다면, 양자 물리학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안하여 양자물리학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슈뢰딩거(Ervin Schrödinger, 1887~1961)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1887년에 태어났다. 1914년에 빈(Wien)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슈뢰딩거는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는 장교로 오스트리아 포병부대에 근무하기도 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슈트트가르트, 브레스라우, 취리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계속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한 것은 취리히 대학에 근무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물리량이 양자화 되어 있다는 것과 빛이나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다는 것이 물리학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리학자들 중에는 양자화 된 물리량을 가지는 입자들을 파동으로 다루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자가 가지는 에너지와 운동량은 연속된 값이어야 하지만 파동은 띄엄띄엄한 값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하는 방정식을 찾다

슈뢰딩거는 전자를 파동으로 다루어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는 방정식을 찾아내기로 했다. 이 연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1926년 1월에 슈뢰딩거는 물리학 연대기에 발표된 「고유값 문제의 양자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안했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얻어낸 파동함수가 수소형 원자의 에너지 고유값을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고 4주 후에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새롭게 유도한 두 번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조화진동의 문제와 이원자 분자의 문제를 양자 역학적으로 다루었다. 

 

이 때 이미 독일의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을 이용하여 양자화된 물리량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1926년 5월에 발표된 세 번째 논문에서 자신의 방법이 하이젠베르크의 방법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스펙트럼이 전기장에서 나누어지는 슈타르크(Stark’s effect) 효과를 양자 역학적으로 설명했다. 네 번째 논문에서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논문들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의 하나가 되었고,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양자 혁명이 가능하게 했다. 이 논문들로 인해 슈뢰딩거는 193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모습은?

현대 물리학이 양자 물리학의 기초 위에 성립되었고, 양자 물리학의 핵심이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면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슈뢰딩거 방정식은 미분 방정식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미분과 적분을 배우지만 본격적으로 미분 방정식을 배우지는 않는다. 따라서 식으로 나타낸 슈뢰딩거 방정식을 보고 그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써서 보여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뢰딩거 방정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가지는 물리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는 미분 방정식이다. 어떤 조건 하에서 전자가 운동하고 있을 때 슈뢰딩거 방정식에 이 조건을 대입하여 해를 구하면 전자가 어떤 물리량을 가지고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나타내는 파동함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데 슈뢰딩거 방정식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과는 매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 초기 조건을 대입하여 해를 구하면 단 하나의 해가 구해진다. 물론 해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해를 구하는 수학적 능력의 문제이지 방정식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해를 구하기만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슈뢰딩거 방정식에 초기조건을 대입하여 방정식을 풀면 하나의 해가 아니라 여러 개의 해가 구해진다. 이런 해들은 각각 다른 물리량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의 파동함수를 구하면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지는 여러 가지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전자가 이런 에너지 중의 한 에너지를 가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에너지 중의 어떤 에너지를 가질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 렇다면 파동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따라서  양자 물리학에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해를 구하는 것보다도 구한 해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어 양자 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던 슈뢰딩거가 양자 물리학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구한 파동함수의 해석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 : 확률 파동 함수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구한 파동함수는 말 그대로 전자의 파동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라고 생각했다. 전자가 파동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면 전자 파동을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의 보른(Max Born, 1882~1970)은 1926년 10월 파동함수를 확률함수라고 새롭게 해석했다. 확률함수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ε1이라는 에너지를 가지는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 Ψ1, ε2의 에너지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 Ψ2등의 해를 구할 수 있다고 하자. 슈뢰딩거는 Ψ1은 ε1의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의 파동을, 그리고 Ψ2는 ε2의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의 파동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른은 Ψ1은 전자가 ε1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을 나타내고, Ψ2는 전자가 ε2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을 나타내는 확률함수라고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보른에 해석에 의하면 전자가 어떤 에너지를 가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에너지를 가질 확률이 얼마인지는 알 수 있게 된다.


 

 

슈뢰딩거, 끝내 파동함수의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슈뢰딩거는 파동함수에 대한 이러한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연법칙이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른을 비롯한 주류 양자물리학자들의 해석이 실험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슈뢰딩거는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양자물리학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슈뢰딩거는 1935년에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의논한 끝에 주류 양자 물리학자들의 해석을 반박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다룰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슈뢰딩거도 플랑크(M. Planck),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 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면서도 양자 물리학을 반대해 현대 물리학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과학자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양자 물리학의 중심인물이었던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와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해석을 반대했던 아인슈타인 사이에 있었던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슈뢰딩거의 삶과 연구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한 직후인 1927년에 슈뢰딩거는 막스 플랑크의 뒤를 이어 독일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어 독일로 갔었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갔다. 그러나 사생활이 문제가 되어 영국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는 두 아내와 같은 집에 살면서 두 아내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영국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가려던 계획도 같은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 곧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와 화해하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해임된 그는 오스트리아를 탈출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가 그곳에서 17년간 살았다. 아일랜드에 사는 동안에도 그는 아내가 아닌 두 여인으로부터 두 아이를 낳기도 했다.


더블린에 사는 동안 슈뢰딩거는 통일장의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고, 1944년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분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DNA분자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프란시스 크릭은 이 책을 읽고 DNA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회고록에 기록해 놓았다. 1956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슈뢰딩거는 1961년 죽을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살았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228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물리량의 양자화

눈에는 연속된 물질처럼 보이는 물과 같이 매끄러운 물질도 원자라는 작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학교에서 화학과 물리를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20세기가 시작되던 1900년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에너지, 운동량과 같은
물리량도 연속된 양이 아니라 띄엄띄엄한 값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뉴턴역학을 기초로 하는 고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 운동량, 속도와 같은 물리량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물질과는 달리 연속적인 양이라고 생각해왔다. 정지한 물체에 에너지를 가하면 속도가 증가하면서
운동에너지도 증가한다. 이 때 우리는 에너지가 0에서부터 연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에너지도 덩어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덩어리로 주고받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에너지도 이 덩어리의 정수배로만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덩어리의 크기가 10이라면 물체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10, 20, 30 40 … 이런 값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에너지 덩어리를 에너지 양자라고 부르고 에너지가 이렇게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으면 에너지와 관계된 다른
물리량들도 양자화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것은 에너지의 덩어리가 아주
작기 때문이다.
물리량이 양자화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속된 물리량만을 취급할 수 있는 뉴턴역학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뉴턴역학이 띄엄띄엄한 물리량을 다룰 수 없다면 이런 물리량을 다루는 새로운
물리학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19세기 물리학자들을 괴롭힌 문제 중에 흑체복사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물체들이 빛을 내기 때문이다. 물체들이 내는 빛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빛을 반사하는 빛이고 하나는 스스로 내는 빛이다. 

 

흑 체란 외부에서 오는 빛을 모두 흡수하고 반사하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검은 물체는 빛을 가장 작게 반사하므로 이런 물체를 완전한 흡수체라는 의미에서 흑체라고 부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검은 물체도 일부의 빛을 반사하므로 완전한 흡수체는 아니다.

 

완전한 흡수체인 흑체에서는 반사광이 나오지 않으므로 흑체에서 나오는 빛은 스스로 내는 빛뿐이다. 19세기 과학자들은 흑체가 내는 빛의 파장과 세기가 물체의 온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이 흑체복사의 문제였다. 우리는 일상경험을 통해 온도가 낮은 물체는 붉은색 빛을 내고 온도가
높아지면 푸른색 계통의 빛을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낮은 온도에서는 붉은 빛의 세기가
강하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푸른빛의 세기가 강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흑체복사의 문제란
물체의 온도에 따라 왜 다른 색깔의 빛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문제였다.

 

빈(Wilhelm Wien, 1864~1928),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Rayleigh, 1842~1919),
진즈(James Hopwood Jeans, 1877~1946)와 같은 많은 학자들이 흑체복사의 문제를 고전
물리학을 이용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고전 물리학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체복사 문제를 양자화 가설을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였다. 플랑크는 양자 이론의
창시자이며 20세기 물리학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다.
플랑크는 1858년에 독일의 킬에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1867년에 플랑크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플랑크는 음악에서 뛰어난 소질을 보였지만 음악 대신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상담했던 뮌헨대학의
물리학 교수 졸리(Phillip von Jolly)는 플랑크에게
“물리학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발견되어
이제 남은 것은 몇 개의 사소한 구멍들을
메우는 일뿐이다.”라고 말하며 물리학을
공부하지 말도록 권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플랑크는 “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알려진 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플랑크는 그의 소박한
바램과는 달리
양자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기초를 놓았다.
 

 

플랑크가 흑체복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894년부터라고 전해진다. 당시 그는 전기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최소의 에너지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전구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흑체가 내는 전자기파의 세기가 파장에 따라 그리고 물체의 온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흑체복사의 문제는 1859년에 키르히호프(Kirchhoff )가 이미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실험적으로만 다루었을 뿐 이론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빈(Wilhelm Wien)은 실험을 통해
빈의 법칙을 제시했지만 이 법칙은 높은 진동수의 전자기파에는 잘 들어맞았지만 낮은 진동수에서는
잘 맞지 않았다.

 

레일리(Rayleigh)와 진즈(Jeans)가 전자 기파의 이론을 이용하여 분석한 레일리-진즈의 법칙은 진동수가 큰 전자기파에서는 전혀 맞지 않았다. 플랑크는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는 가설을 레일리-진즈의 법칙에 적용하여 흑체복사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그 결과를 1900년 12월 14일 독일 물리학회(DPG)에서 발표했다. 에너지를 비롯한 물리량이 양자화 되어 있다는 양자화 가설이 흑체복사문제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플 랑크가 제안한 새로운 이론의 핵심은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는 임의의 작은 양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 형태로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식을 이용하여 나타내면 진동수가 ν인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hν라는 에너지 덩어리로만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h는 플랑크 상수6.6×10-34J‧sec 이다. 플랑크는 이 이론으로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플랑크는 후에 양자 가설을 제안할 때 에너지 양자 즉 에너지 덩어리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양자화 가설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가설이었으며, 
(중략) 이에 대해 심각하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자화 가설은 고전물리학과는 전혀
다른 양자물리학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플랑크의 과학적 업적 중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플랑크는 양자화 가설은 물론 양자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양자물리학을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보수적이었던 그는 양자화 가설을 이용하여 흑체복사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에너지 덩어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양자가설을 고전물리학의
틀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양자 물리학은 전혀 다른 방향
으로 발전해 나갔다. 양자물리학의 기초를 마련했던 플랑크가 양자물리학을 싫어했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양자 역학의 기초를 놓은 플랑크 뿐만 아니라 양자 역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을 반대하는 역설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763

양자역학과 마음 (Double-Slit 실험)




양자역학(동영상)



2009년 10월 4일 일요일

양자물리학의 이해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