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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특수 상대성 이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1632년에 「두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책을 출판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천문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천문체계를 비교한 이 책에서 갈릴레이는 밖을 볼 수 없는 갑판 아래의 방에서는 어떤 실험을 하더라도 배가 움직이고 있는지 서 있는지를 알아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서 있는 상태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상태는 물리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주 공간에 나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면 내가 서 있는지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서 있다거나 달린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리 법칙은 물리량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물리 법칙이 있기 위해서는 물리량이 있어야 한다. 물리량은 측정된 양이다. 물리학이 수학과 다른 것은 수학은 정의된 양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물리량은 측정된 양(측정 가능한 양)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양이 물리량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측정 방법이 제시된 양이어야 한다. 두 가지 다른 상태가 물리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은 두 상태에서 측정한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리법칙이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어떤 실험을 해도 정지해 있는지 달리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런 원리를 우리는 상대성 원리라고 한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지구 위에서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상대성 원리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성 원리를 바탕으로 뉴턴역학의 기본이 되는 갈릴레이 상대론이 성립되었다. 갈릴레이의 상대론에서는 정지해 있으면서 측정한 물리법칙과 달리면서 측정한 물리법칙이 같을 뿐만 아니라 물리량도 같아야 한다고 했다. 갈릴레이 상대론에 의하면 측정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양은 속도뿐이어야 한다. 달리고 있는 자동차에서 측정한 기차의 속도와 서 있는 사람이 측정한 기차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속도가 측정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속도는 상대방과의 거리의 변화를 나타내는 양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상대론은 우리가 일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을 물리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사해 살고 있던 부모님을 찾아갔다. 부모님들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 진학하도록 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했지만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코프스키 교수는 그에게 게으른 강아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교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고 베른에 있는 특허 사무소에 취직했다.

 


아인슈타인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미국의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과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는 정밀한 측정을 통해 빛의 속도가 지구의 공전 속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일정한 값을 가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기 전에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이에 대해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상대론에 의하면 관측자의 상태에 관계없이 속도를 제외한 모든 물리량은 같은 값으로 측정되어야 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리법칙도 같아야 한다. 그러나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같게 관측된다는 것은 이러한 갈릴레이의 상대론이 옳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200년 동안 가장 완전한 물리법칙으로 생각해 온 뉴턴역학이 틀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물리학자 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러나 어떤 제안도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제안은 대부분 기존의 물리체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특허 사무소에서 물리학계와는 거의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물리체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1905년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그는 정지해 있는 상태나 같은 속도로 운동하는 관측자에게 같은 물리법칙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상대성 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항상 같은 값으로 측정된다는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사실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관성계에서 측정한 물리량이 달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는 정지한 상태에 있는 관측자가 측정한 물리량을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관측자가 측정한 물리량으로 환산하는 환산식을 제안했다. 이 식이 바로 로렌츠 변환식이다.

 

아래에 나타낸 로렌츠 변환식은 정지해 있는 관측자가 측정한 물리량을 v의 속도로 x방향으로 달리는 관측자가 측정한 양으로 환산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한 마디로 말해 모든 관성계에서 같은 물리법칙이 성립하고 빛의 속도가 일정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운동 상태에 있는 관측자가 측정한 물리량이 달라야 한다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원리와 빛의 속도를 위해 물리량을 희생시킨 이론인 것이다. 빛의 속도와 물리량 모두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빛의 속도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참 간단한 이론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두 다른 상태에 있는 관측자에게 같은 물리법칙이 성립하고 빛의 속도가 일정하도록 하기 위해 물리량을 변화시키다 보면 우리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물리량도 변해야 한다. 관측자의 상태에 따라 길이가 다르게 측정된다는 것은 그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질량마저 다른 값으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데 이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마저 바꾸지 않으면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시간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관계없이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가 생겨나고 진화하고, 생명체가 나타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간마저도 관측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상태에 있는 두 관측자에게 똑같이 운동량 보존 법칙이 성립하려면 질량도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양이어야 한다. 속도가 빨라져서 빛의 속도에 다가가면 질량은 엄청나게 커진다. 정지해 있는 물체에 에너지를 가해 속도를 높이면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한다. 뉴턴역학에서는 질량은 일정한 채 속도가 증가하여 운동에너지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증가해야 한다. 따라서 물체에 가해준 에너지의 일부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데 사용되지만 일부는 질량을 증가시키는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이런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E=mc2이라는 식이다.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런 내용 때문에 상대성 이론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특수상대성이론은 여러 가지 장치를 설계하거나 실험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특히 빛의 속도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입자들을 다루는 입자 가속기의 설계와 제작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은 기존의 역학 체계를 뒤흔드는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등속도로 운동하는 관성계에만 적용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시킨 아인슈타인은 곧 가속도를 가진 계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관련글 :  원자와 원자핵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56

일반상대성 이론

등속도로 운동하는 관성계를 다룬 특수상대성이론은 모든 관성계에서는 동일한 물리법칙이 성립한다는 상대성 원리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반면에 일반상대성이론은 모든 가속계에서도 같은 물리법칙이 성립한다는 확장된 상대성원리와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동등하다는 등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론이다. 그 중에서도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동등하다는 등가원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행한 낙하실험을 통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갈릴레이가 그런 실험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 실험이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실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중요한 물리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체가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것은 지구와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 때문이다. 어떤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세기는 그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중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이런 질량을 중력질량(m)이라고 부른다. 한편 물체에 힘을 가며 가속도가 생기는데 이 때 가속도의 크기는 힘의 크기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 가속도의 크기를 결정하는 질량은 관성질량(m')이고 한다. 전기장의 작용으로 가속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물체에 가해지는 전기력(qE) 을 관성질량(m')으로 나누면 된다(a = qE/m'). 마찬가지로 중력장 안에서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중력(mg)을 관성질량(m')로 나누면 된다(a = mg/m').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같은 가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다( m = m')는 것을 나타낸다. 과학자들은 정밀한 실험을 통해서도 이 두 질량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력 질량과 관성질량, 이 두 질량이 같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질량이 같은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인슈타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질량이 같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 공간의 근본적인 속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해 우주 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로켓을 가정해 보자. 로켓이 앞쪽으로 가속되고 있으면 로켓 안의 사람들은 뒤쪽으로 힘을 받게 된다. 이 때 로켓 안에서는 무슨 실험을 해도 뒤쪽으로 받는 힘이 로켓 뒤쪽에 있는 물체의 중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로켓의 가속에 의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중력과 가속에 의한 관성력이 같다는 것이다. 이것이 등가의 원리이다. 이것은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동등하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등가 원리를 적용하면 서로 다른 가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가속계를 다른 중력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계로 나타낼 수 있다. 가속계와 관계되었던 관성력이 사라지고 모두 중력장으 로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속계에서의 모든 물리법칙은 이 계 안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장의 세기만 달라졌을 뿐 같은 형태로 성립하게 된다. 이것이 확장된 상대성 원리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가속계가 경험하는 중력장을 어떻게 나타내느냐 하는 문제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의 세기를 휘어진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했다. 평면이 휘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것은 우리가 3차원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 시공간이 휘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4차원 공간이 휘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4차원 이상의 차원으로 나가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과 시간 차원만 인식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는 그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 수학에서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유클리드 기하학은 곧은 공간, 다시 말해 휘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성립하는 기하학이다. 2차원를 예로 든다면 평평한 평면에서만 적용되는 기하학이다. 그러나 모든 평면이 평평한 것은 아니다. 공 모양인 지구의 표면이나, 언덕과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산이나 들은 평평하지 않다. 이런 평평하지 않은 평면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평행선이 서로 만날 수도 있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있다. 평평하지 않은 평면이나 공간에 적용되는 기하학은 그것을 발전시킨 독일 수학자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의 이름을 따서 리만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리만 기하학을 이용하여 휘어진 공간의 곡률로 설명했다. 중력이라는 힘을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로 바꿔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을 지구와 태양 사이의 작용하는 중력으로 설명하는 대신 태양의 질량에 의해 휘어진 공간 때문에 똑바로 진행하려는 지구의 운동이 영향을 받아 태양을 도는 운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은 1907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후에 그는 그것을 ‘나의 인생의 가장 행복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할 때까지는 8년이라는 고통스런 시간을 더 견디어내야 했다. 이 당시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일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편지를 쓸 시간을 낼 수 없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중요한 문제들을 생각하느라고 밤낮으로 나의 두뇌를 괴롭혔다. 그것들은 전례 없이 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진전시키는 것들이었다.

 

뉴턴은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지구가 만들어 놓은 시공간의 웅덩이 속으로 사과가 굴러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은 빛의 경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빛은 똑바로 진행하려고 하지만 휘어진 공간 때문에 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이론이 뉴턴의 중력 이론을 단지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이라면 뉴턴의 중력 이론을 버리고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이론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중력의 세기가 그리 크지 않는 경우에 뉴턴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모두 정확하게 물체의 행동을 기술할 수 있다. 따라서 약한 중력장에서의 실험으로는 뉴턴의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 중 어느 이론이 우월한지를 가려낼 수 없다. 그러나 중력이 아주 큰 곳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 이론과 뉴턴의 중력 이론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중력이 강한 곳을 찾아내 실험을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기 전인 1912년 초에 아인슈타인은 프로인들리히(Erwin Finlay-Freundlich, 1885~1964)와 큰 질량 근처를 지나는 빛의 경로를 측정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는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처음에 그들은 태양계에서 가장 질량이 큰 행성인 목성의 중력이 먼 별에서 오는 빛을 굽어가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목성의 중력이 빛의 경로를 휘게 한다면 목성이 없을 때의 별의 위치와 목성이 이 별들 앞을 지날 때 별들의 위치가 달라져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지구 질량의 318배 정도의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목성은 빛의 경로에 관측이 가능할 만큼의 영향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계산을 통해 목성보다 천 배나 되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태양의 중력은 먼 별에서 오는 빛에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태양이 없는 밤하늘의 사진을 찍어 놓고, 태양이 이 별들 앞을 지나갈 때 이 별들의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면 태양에 의해 빛이 얼마나 휘어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인들리히는 일식 때 별들의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를 했다. 프로인들리히는 아인슈타인의 도움을 받아 1914년 8월 21일에 크리미아에서 일어날 일식 때 태양 부근의 별들을 촬영하기 위한 관측여행을 준비했다. 그는 1914년 7월 19일에 크리미아로 출발했다. 그러나 프로인들리히가 일식을 관찰하기 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는 간첩혐의로 러시아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교환을 통해 프로인들리히는 9월 2일에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관측 여행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프로인들리히가 시도했던 것과 똑같은 관측 여행을 시도한 사람은 영국의 아서 에딩턴(Sir Arthur Stanley Eddington)이었다. 케임브리지 천체연구소 소장이었던 에딩턴은 종교적인 이유로 군에 입대하기를 거부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수용소에 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자 천문학자였던 프랭크 다이슨(Frank Watson Dyson, 1868~1939)이 에딩턴을 군에 보내는 대신 1919년 3월 29일에 있을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기자고 정부에 제안하여 허락을 받았다.


 

1919 년 3월 8일에 에딩턴과 그의 관측팀은 리버풀을 출발했다. 에딩턴은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관측팀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브라질의 소브랄로 향하게 했고 에딩턴이 이끄는 두 번째 그룹은 서부 아프리카의 적도 기아나 해변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프린시페 섬으로 향했다. 일식이 있던 날 두 곳 모두의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구름이 없는 아주 짧은 순간에 태양 주위의 별들 사진 몇 장을 찍는데 성공했다. 

 


 

 

일식 때 찍은 사진에 나타난 태양 주위의 별들은 태양이 없는 밤에 찍은 사진보다 태양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멀어진 정도는 오차의 한계 내에서 아인슈타인의 예상치와 일치했다. 에딩턴은 이 관측결과를 1919년 11월 6일 왕립천문학회와 왕립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 에딩턴은 이 발표에서 관측결과와 함께 이 관측결과가 가지는 놀라운 의미를 설명했다. 다음 날 타임지는 ‘과학의 혁명 - 우주에 관한 새로운 이론 - 뉴턴의 이론이 무너졌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며칠 후에는 뉴욕 타임즈가 ‘하늘에서 빛은 휘어진다 - 아인슈타인 이론의 승리’라는 기사를 다루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 이론과 함께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고 아인슈타인이 과학자들의 스타에서 대중적 스타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