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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역행렬은?

행렬 A의 역행렬은

AX=XA=E

일때 X이지요~~~

이차 정사각행렬의

역행렬을 구하는 식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0의 0제곱은?

어떤 수의 0 제곱은 1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한편으로 0의 거듭제곱은 언제나 0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00의 값은 0일까, 아니면 1일까?

 

 

윈도에 내장되어 있는 계산기(공학용 보기를 이용)를 이용해서 0의 0제곱을 계산해 보면 1을 출력한다. 인터넷에서 계산기 찾아서 이용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00=1일까?

 

 

 

한편, 업무용 프로그램인 엑셀(Excel)에 0의 0제곱을 입력하면 오류 메시지가 출력된다. 수학용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매스매티카(Mathematica)에서도 00을 “Indeterminate(정할 수 없는, 不定)”로 처리한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00을 1로 처리하고,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처리할 수 없다고 하니, 심지어 같은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에서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00을 무엇으로 생각해야 할지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논쟁 및 고민거리의 하나였다.

 

 

“거듭제곱”이란 “거듭하여 자신을 곱한다”는 뜻인데, 세 번 거듭 곱하거나, 스무 번 거듭 곱하는 것은 누구나(?) 무슨 뜻인지 안다. a가 수일 때 a를 n개 곱한 것을 an으로 나타내는데, 지수 n이 자연수일 때는 그 뜻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표기법에 따르면 지수 n이 자연수인 한 당연히 0n=0 이다. 그렇다면 지수가 0이나 음수인 경우는 어떻게 될까? a를 0개 곱하거나 -3개 곱하거나 할 수는 없으므로 곧이곧대로는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음수끼리 곱하면 양수’라는 설명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열쇠를 쥔 것은 m과 n이 자연수일 때 성립하는 다음 등식, 즉 ‘지수 법칙’이다.
                                            

이 지수법칙이 음의 지수에 대해서도 성립하도록 a-3같은 것을 정의하려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양변을 a5으로 나눠주면, a-3은 a2÷a5 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양변을 a5으로 나누려면 이 수가 0이 아니어야 한다.

만약 a=0이라면 이런 논법이 통하지 않는다. a가 0이 아닐 때는 다음과 같다.

 

 

이렇게 음수와 0에 대해서도 지수를 정의해 주면 (밑이 0일 때는 제외하고) 고맙게도 지수법칙 am×an=am+n이 여전히 성립한다. 예를 들어, a-3×a-4=a-7임을 확인할 수 있다. 거듭제곱과 지수의 관계에 대한 이상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자연수 n에 대하여 0n=0이고, 0이 아닌 수 a에 대하여 a0=1이지만, 밑과 지수가 모두 0인 00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00은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과연 합리적인 정의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특히 다항식과 관련한 경우, 00을 1로 두면 수식이 간단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다항식을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x3은 3차항, -5x2은 2차항이다. 7x는 1차항인데, 7x1이라 쓰면 차수를 알 수 있게 해 주므로 일관성이 있다. 남아 있는 상수항 2는 0차항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2x0이라 쓰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따라서 차수를 고려해서 다항식을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쓸 수 있다.  

 

원래 다항식에 x=0을 대입하면 당연히 값이 2인데, 차수를 밝혀준 식에 대입할 경우 00= 1이어야 양변이 일치한다! 따라서 00= 1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처럼 극한 이론이 발전하면서 00=1로 간주하자는 주장이 크게 공감을 얻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예를 들어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로 극한 이론을 엄밀하게 정립한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는 1821년에 쓴 저서에서 여전히 00은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1830년대에 이탈리아의 수학자 리브리(Gulielmo Libri, 1803-1869)는 00=1을 증명하는 논문을 썼는데 내용이 다소 명확하지 못하여, S라는 서명으로만 알려진 익명의 수학자의 비판을 받았다.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 뫼비우스(F. Möbius, 1790-1868)는 얼마 후 리브리의 주장을 옹호하는 논문을 한 편 발표하였는데,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가끔 a0=1에 대하여 “거듭제곱은 1에 어떤 수를 곱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수가 0이면 아무것도 곱하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그 값은 1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거듭제곱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편일 수는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앞뒤가 바뀐 설명이다. 거듭제곱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a0=1이므로 an은 (지수 법칙에 따라) 1에 a를 n번 곱하는 것이다”와 같은 말이다. 즉, a0=1을 가정한 상태에서 하는 설명이므로, 이로부터a0=1이 된다고 말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런 설명을 이용해서 00= 1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식도 많고, 글도 길어져서 필자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읽기 힘든 분을 위하여 마무리를 겸하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00은 정의하지 않는다. (값을 아직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2. 그렇지만 ‘주의하여 사용한다면’ 편의상 00= 1로 정의할 수 있다.
3. 위대한 수학자도 실수할 때가 있다.

 

 

 

관련글 :  -1×-1 = 1인 이유는?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ath/226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1+1이 2인 이유?

발명왕 에디슨이, “찰흙 한 덩이에 찰흙 한 덩이를 더하면 여전히 한 덩이이므로 1+1=1일 수도 있다”고 질문해서 선생님이 말문이 막혔다는 일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화에 공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디슨은 오른손에 한 덩이를 들고, 왼손에 한 덩이를 든 다음, 두 덩이를 합쳐서 한 덩이라고 말을 했다는데 과연 에디슨의 말은 옳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에디슨이 오른손에 든 한 덩이와 왼손에 든 한 덩이는 같은 한 덩이일까? 정확히 무게를 재보고 부피를 재보거나 모양을 보면 틀림없이 다를 것이다. 양쪽이 다른 데도 같은 '한 덩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에디슨에게는 '한 덩이'란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양' 정도의 뜻이었을 것이다. 그럼 양손에 든 한 덩이씩을 합친 것은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양일까? 아닐 것이다. 즉, 에디슨의 주장 1+1=1에서 등호 = 뒤에 나오는 1은 등호 앞에 나오는 두 개의 1에서와 뜻이 달라진 것이다. 따라서 에디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한 덩이'는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애매모호'한 단위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애매모호하지 않은 단위인 그램(g) 같은 것을 썼더라면 이런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1+1=2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아마도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배우는 '공식'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공식이 왜 성립하는지 이유를 아느냐, 혹은 증명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당연하잖아. 증명할 필요조차 없다.
2. 모르겠다. 증명이 어렵다고 들었다.

 

하긴 ‘3. 난 수학이 싫어.’나 ‘4. 그걸 왜 나한테 물어?’가 더 많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주 상반되는 반응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사실 1번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도 1+1=2인 이유는 당연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그 '당연'한 얘기를 잠시 써 보자.

 

 1, 2, 3, ...과 같은 자연수는 사람이 돌멩이 같은 사물의 개수를 세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숫자이다(오직 사람만이 자연수의 개념을 아는 동물이다). 개 수를 알고 난 뒤,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연산이 ‘덧셈’이다. 예를 들어 돌멩이 다섯 개가 있는데, 돌멩이 한 개를 더 가져다 놓으면 전부 몇 개냐는 종류의 지극히 당연한 질문에서 출발한 연산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질문을 수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5+1을 구하는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1+1을 구하라는 것은 돌멩이 한 개에 돌멩이 한 개를 더 가져다 놓을 때 몇 개냐는 질문을 숫자로 쓴 것에 불과하다. 답이 2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1+1=2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소문이 난 것일까? 이러한 말이 나도는 기원 중의 하나로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과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 1861-1947)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라는 책이 꼽히고 있다. 이 책은 수학자들이 보기에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기호를 동원하여 1+1=2를 증명하는데, 그 증명이 360쪽에 나온다고 (몇 번째 판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알려져 있다. 그렇긴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저 책은 1+1=2 하나만을 증명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므로, 앞쪽에 1+1=2의 증명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른바 기호 논리학, 집합론을 철저하게 밑바닥부터 구성하기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논리’ 자체와, 집합론, 자연수까지도 최소한의 원리만을 가지고 완벽하게 구성한 다음에야 1+1=2와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그 증명이 한참 뒤에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수학원리’는 내용이 거의 기호로 설명되어 있어 읽기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실제로 '수학원리'를 다 읽은 사람은 총 세 명, 저자 두 명과 수학자 쿠르트 괴델(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하다) 밖에 없다는 전설이 있다.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수학 천재인 주인공이 “페아노 공리계를 이용해서 1+1=2를 증명한다”는 말을 해서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대체 무슨 뜻일까? 여기에서, 앞서 설명한 1+1=2인 이유를 다시 살펴보자. 엄밀히 따지면 돌멩이를 이용해 ‘설명’한 것이지 ‘증명’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1+1=2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수학 원리’를 매일 한 쪽씩 1년 동안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닷새는 남는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아노 공리계이다. 사실 1+1=2는 자연수 ‘1’과 ‘2’가 무엇인지, 자연수의 덧셈 ‘+’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 주는 순간 어이없을 정도로 당연히 증명돼 버린다. 그래서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증명이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수학 천재를 보여주는 장치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아래를 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덧셈을 ‘정의’하기 시작하자마자 증명이 나올 것이다. ‘자연수가 무엇이냐’, ‘덧셈이 무엇이냐’를 명확히 정의하는 공리 체계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워 많이 애용되는 공리 체계는 이탈리아 수학자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가 고안한 ‘페아노 공리계’이다.

 

 

 

 

페아노 공리계가 자연스러운 것은, 사실 사람이 자연수를 배우는 방법인 손가락을 꼽는 방법을 그대로 흉내 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 숫자를 배울 때는 손가락을 꼽는다.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손가락을 하나 꼽으면서 그것을 1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수학적으로는 “1은 자연수이다”라고 말한다. 그 럼 1만 자연수일까? 어린아이는 손가락을 더 꼽으면서 1 다음은 2이고, 2 다음은 3이고, 3 다음은 4이고... 이런 식으로 모든 자연수를 다 배웠을 것이다. 이것을 ‘손가락’같은 용어를 빼고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n이 자연수이면, ‘n 다음 수’는 자연수이다”가 된다. n 다음 수를 n’ 이라고 쓰기로 하면, 1’ = 2, 2’ = 3, 3’ = 4,… 라고 쓸 수 있다. 한편 1에 대해서는 “n’ = 1인 자연수 n은 없다”가 성립한다. 자 연수는 이제 잘 알겠지 싶은 아이에게 숫자를 세어보라고 물어보면, 1, 2, 3, 5,... 같은 식으로 숫자를 한 두 개쯤 건너뛰는 일은 흔한데, ‘3 다음은 5가 아니야’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자연수의 개념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앞서 나온 ‘다음 수’의 용어를 써서 표현하면, ‘3의 다음 수는 4의 다음 수와 다르다’고 쓸 수 있다. 이것을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 m과 n이 다르면, m’과 n’도 다르다”가 된다. 이 정도만 알면 자연수는 다 안 것이나 다름없다, 즉, 위의 네 가지 성질을 갖는 가장 작은 것이 바로 자연수라는 것이 이름도 거창한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이다. 이것을 식으로 표현하면 “ 1 ∈ P이고, 모든 n ∈ P에 대해 n’ ∈ P가 성립하면 P는 자연수 집합을 포함한다(여기서 1 ∈ P라는 것은 1이 P라는 집합에 속한다는 뜻이다)”가 된다. 위의 5가지를 공리로 하여 자연수를 정의한 것을 ‘페아노의 공리계’라고 한다. (참고로 자연수를 0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원래대로 1부터 시작했음을 밝혀둔다.)

 

 

 

 

 

이 제 자연수 집합에서 덧셈 a + b를 정의해 보는데, 이것 역시 처음 덧셈을 배울 때를 돌이켜 보자. 아이들이 머리가 발달하면서 돌멩이 다섯 개에 한 개를 더 놓으면, 굳이 처음부터 세지 않고도 다섯의 다음수가 여섯임을 떠올리고 여섯 개라는 것을 쉽게 알아채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즉, ‘한 개를 더하면 다음수’라는 얘기인데, 식으로 쓰면 아래와 같다.

 

 

위에서 m=1이면 1 + 1 = 1'가 된다. 그런데 1’을 2라고 부르기로 하였으므로 1+1=2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수에 1을 더하면 다음수인데, 1의 다음수는 2”라는 말이 1+1=2라는 공식의 본질을 담고 있다.

 

원하는 1+1=2는 증명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m + 1 = m’은 자연수에 1을 더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만 2나, 3 등을 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은 3+4=7 같은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돌멩이의 비유를 들자. 아직 덧셈을 모르는 아이에게 돌멩이 세 개가 있는 곳에 돌멩이 네 개를 놓으면서, 개수를 물어보면 곧바로 대답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돌멩이 네 개를 놓을 때 하나씩 천천히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돌멩이를 한 개 놓으면 개수가 네 개이고, 한 개 더 놓으면 개수가 다섯 개이고,…, 한 개씩 더 놓을 때마다 개수가 전보다 하나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호로는 아래와 같이 쓴다.

 

 

이 두 가지 성질만 알면 덧셈은 모두 알게 된다. 좀 더 도전해 보고 싶다면 1+7이 8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기 바란다. 7+1=8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했다. 하지만 1+7은 7+1과는 약간 다르다. 아직 교환법칙을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ath/68



수학으로 상상하기 - 4차원 세계의 모습

4 차원 세계는 우리가 실제로 가 보질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의 경험이 3차원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차원이라고 해도 수학의 확실성과 엄밀성, 자연스러운 확장을 통해 우리는 고차원의 일부를 보고 느낄 수 있다.

 

4차원 세계는 만화나 영화의 끊임없는 소재이다. 니나를 구해내기 위해 어른들이 모르는 4차원 세계로 달려가는 ‘이상한 나라의 폴’, 여섯 명의 난쟁이들과 케빈의 시간 여행을 그린 영화 ‘시간 도둑들’, 영화와 TV시리즈로 제작되어 끊임없이 방송되는 ‘스타게이트’, 시간 여행과 비행기 사고를 다룬 ‘4차원 도시’ 등 4차원 세계를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는 참 많고 꾸준히 제작된다.

 


그 런데, 이런 만화나 영화에서 나타난 4차원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는 마법을 쓸 수 있다던 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나 생물들이 살고 있다던 지 할 뿐 겉 모습은 우리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한 나라는 수학적으로 볼 때는 4차원으로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영화에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지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와 다른 세계로 이동할 때만 잠시 4차원 세계를 거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즉, 진짜 4차원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만화나 영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4차원 세계는 정말 어떤 모습일까?
사 실 4차원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으로 되어있고, 시간을 합치면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4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4차원 세계는 4차원 공간을 가진 세계를 말한다. 4차원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수학자들에게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현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런 것들 중에 하나가 차원의 확장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차원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어떤 공간의 차원은 그 공간의 성분들 중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성분들을 최대한 모아 놓았을 때, 그런 성분의 개수가 몇 개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은 앞뒤, 좌우, 위아래의 3가지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3차원이다. 2차원 공간은 평면 위의 공간이다. 평면 위의 점을 생각해보면 점은 앞뒤, 좌우의 2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평면은 2차원이다. 1차원 공간은 수직선 하나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수직선 위에 있는 점이 움직인다고 생각할 때, 이 점은 수직선을 따라 좌우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1차원인 것이다. 1차원 공간은 간단하게 수직선 하나로만 표시할 수 있지만, 2차원 이상의 공간을 표시하려면 위치를 정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데카르트 좌표계 혹은 직교좌표계라는 것이다. 2차원 공간은 2개의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직선으로, 3차원 공간은 3개의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직선으로 표시한다.

 

 

 

그러면 4차원은 수직선 4개가 서로 직교하는 공간이며, 5차원은 수직선 5개가 서로 직교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은 우리가 평면 위에 그릴 수 없고 단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각 차원의 공간에 있는 특별한 원의 반지름을 구하여보자. 생각하기 쉽도록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의 순서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평면에서 생각해 보자. 2차원 평면에서 그림과 같이 반지름의 길이가 1인 원 4개를 접하게 하고, 다섯 번째 원을 네 개의 원에 동시에 접하도록 가운데에 그리자. 그럴 때 이 작은 원의 반지름은 얼마일까?

 

 

 

 

이 번에는 3차원 공간에서 생각해 보자. 3차원 공간의 경우는 모두 8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므로 오른쪽 그림과 같이 반지름이 1인 8개의 구를 접하게 놓을 수 있고, 그 가운데 작은 구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작은 9번째 구의 반지름을 구해 보자. 반지름이 1인 8개의 구의 중심은 각각 (1,1,1), (1,1,-1), (1,-1,1), (-1,1,1), (-1,-1,1), (-1,1,-1), (-1,-1,1), (-1,-1,-1)이므로, 평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면 약 0.732임을 알 수 있다.

 

 

이 제 4개의 수직선이 서로 직교하고 있는 4차원 공간에서도 그림으로 그려서 나타낼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마도 4차원 공간에서는 16개의 4차원 구가 서로 접해 있고, 그 가운데에 17번째 작은 4차원 구가 위치해 있을 것이다. 이 작은 4차원 구의 반지름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면 계산할 수 있다. 그 값은 1이 된다!

 

이 상한 일이 벌어졌다. 서로 딱 붙어 있는 4차원 구의 반지름은 1인데 그 사이에 똑 같은 크기의 4차원 구가 들어간 것이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시는지?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4차원 세계를 보는 셈이다. 4차원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우에는 심지어 서로 딱 붙어있는 구의 사이에 있는 구가 더 커진다. 만일 9차원이라면 반지름 1인 구의 사이에 있는 구의 반지름이 2가 되고 100차원이라면 9가 된다.

 

고 차원은 우리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가 보질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즉, 우리의 생각이 3차원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 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고차원이라고 해도 수학의 확실성과 엄밀성 그리고 자연스러운 확장에 의하여 우리는 고차원의 일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직 수학뿐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고차원 공간에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야지!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ath/45



0.999...는 1인가?

“1 나누기 3은 0.333…. 0.333… 곱하기 3은 0.999…. 그런데, 1/3곱하기 3은 1? 그러면 0.999…는 1? 0.999…가 1과 같다고? 0.999…는 1보다 작을 것 같은데?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작지 않나? 그런데 1하고 같다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0.999…와 관련된 의문에 마침표를 찍어본다.”

 

“무한”이 관련된 문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한편으론 사람들을 무척 혼란스럽게 만든다. 무한소수와 관련된 0.999… = 1이 대표적인 예이다. 유한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고 이해가 어렵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고 자기 주장이 옳다고 싸우기까지 하는 일이 많아, 수학 분야의 영원한 ‘떡밥’이라고 할 수 있다. 0.999… = 1인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왜 0.999…가 1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지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이유는 귀납적인 방식을 잘못 사용하여, 유한한 것을 다룰 때의 사고 방식을 무한의 상황에도 비판 없이 적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0.9는 1보다 작고, 0.99도 1보다 작고, 0.999도 1보다 작다. 이런 식으로 9를 아무리 반복해도 1보다 작으니, 0.999… 또한 1보다 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관찰은 사실 9가 유한하게 이어지는 0.999…9는 1보다 작고, 이런 경우는 무한히 많다라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근거로 9가 무한 개인 0.999…9는 1보다 작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무한히 많은 유한한 상황에 대해 어떤 성질이 성립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상황 자체가 무한한 경우까지 그 성질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0.999…가 1보다 작은지 그렇지 않은지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수에 대해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무한 소수의 정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0.999…를 1에 한없이 다가가며 움직이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0.999…는 수냐고 물어보면 “수는 아니고, 수와 비슷한 것”과 같은 이상한 답변을 하는 일도 있다. 혹은 “0.999…는 1이 아니지만, 그 차이가 아주 작으므로 편의상 0.999… = 1이라고 둔다” 는 식의 잘못된 설명을 하기도 한다.

 

0.999… = 1인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도 대단히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실수의 대소 관계를 이용하는 설명이다. 0.999… ≠1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0.999… < 1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런데, 두 실수 a, b 에 대해 “a < b라는 것”과 “a < c < b인 실수 c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똑같은 얘기이다. 특히, c = (a+b)/2 가 그런 성질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가 3보다 작으므로, 두 수의 평균 2.5는 2보다 크고 3보다 작다) 따 라서 0.999… ≠ 1이라는 주장은 0.999…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수 c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과 똑같은 주장이다. 이런 수를 찾을 수 있을까? 당연히 찾을 수 없다. 0.999…와 1의 평균 c = (0.999… + 1)/2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c를 소수로 나타내면 어떤 수가 될까? 0.999…5일까? “끝자리가 없는” 수 0.999… 의 ‘끝자리’에 수를 붙일 수가 있을까?

 

불행히도 그런 것은 수가 아니다. 0.999…는 소수점 아래로 9가 끝이 없이 이어지는 수라고 해 놓고, 맨 ‘끝’에 숫자를 더 붙인다는 것은 반칙이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런 것도 수라고 인정해 주더라도, 이 수가 0.999…보다 클 것 같지도 않다.

 

똑같은 말이지만, 1에서 0.999…를 빼보기로 하자. 뺄셈 결과는 소수점 아래에 0이 무한히 반복되므로 그냥 0과 같다! 누군가 이 뺄셈의 결과를 0.000…1이라고 주장한다면 역시 반칙을 저지르는 것이다.


 

순환소수를 분수로 고치는 방법을 이용하여 보자.

x = 0.999…라고 두고 양변을 10배 하면, 10x = 9.999…이다. 따라서, 두 식의 양변을 각각 빼면,

 


이므로 양변을 9로 나누어 x=1을 얻는 것이다.

이 계산에 대해서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많다. 10x의 소수점 아래의 9의 개수가, x의 소수점 아래의 9의 ‘개수’보다 하나 적어 보인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뺄셈을 한 결과는 9가 아니라 8.999… 혹은 8.999…1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뒤쪽 계산 결과가 나온다는 주장은 ‘끝자리가 없는’ 수 0.999… 의 ‘끝자리’에 수를 붙인 것이니 앞서 말한 대로 반칙이다. 첫 번째 계산 결과를 주장하는 사람은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에 민감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9x = 8.999…에서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가, x = 0.999…의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와 같은지 분명히 해두면 된다. 아니면 10x = 9.999…의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와 같은지 분명히 해보자. (둘 다 아니라면? 먼저 개수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길) x의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와 같다면, 9x = 8.999…의 양변에서 x를 빼주어 8x = 8, 즉, x=1에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이다. 10x의 소수점 이하의 9의 개수와 같다면, 10x = 9.999…에서 9x = 8.999…를 변끼리 빼주면 x=1을 얻게 되는 것에 불만이 없을 것이다.

 

1/3 = 0.333…는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한소수를 자기 맘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양변에 3을 곱하면, 오른쪽과 같으므로 깔끔하다.

 

이에 대해 무한소수를 3배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혹은 무한소수는 수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⅓이 나 원주율 π등의 무한소수를 수로 생각하고 연산해 온 것이 몇 천 년이고, 그 동안 이런 수를 더하고, 곱하고, 빼고, 0이 아닌 것으로 나누는 일은 아무 문제없이 인류가 해 온 일이다. 물론 수학적으로도 무한소수에 대한 이론은 잘 정립되어 있다. 무한소수를 두려운 대상으로 생각한 나머지 연산이 잘못 됐다든지, 수가 아니라는 주장은 번지수를 확실히 잘못 짚은 것이다.

이제  좀더 수학적인 설명을 하는 동시에 0.999…가 도대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수학자들은 무한소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어떤 수열 an 이 L이라는 숫자로 다가간다는 것은 n이 클수록 L과 an 의 오차가 0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 때, limn→∞an 을 L이라고 쓰기로 약속한다. b1, b2, …가 0부터 9까지의 정수일 때 대응하는 다음과 같은 수열을 생각해 보자.

 

 

이 수열이  다가가는 숫자 L을 무한소수 0.b1b2b3 …로 쓰기로 약속한다. 즉, L = 0.b1b2b3…이다. b1 = b2 = b3 = … = 9일 때, 대응하는 수열은 a1 = 0.9, a2 = 0.99, a3 = 0.999, a4 = 0.9999, …이다. 이제 이 수열 an이 L로 다가가면, L = 0.999…일 것이다. 그런데 이 수열은 1로 다가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1 과 an의 오차는 0.1, 0.01, 0.001, …인데 이 값이 0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1 = 0.999…이다.

 

0.999…=1에 꼭 따라 나오는 질문이 있다. 주어진 수 x에 대하여 x보다 크지 않은 정수 중 가장 큰 정수를 [ x ]라고 쓸 때, [0.999…]의 값이 얼마인지를 묻는 것이다. 0.999… = 1이므로 당연히 [0.999…] = [1] = 1이다. 이 질문은 1보다 작은 쪽에서 1에 무한히 가까이 다가갈 때의 값을 묻는 셈이니까,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좌극한 기호를 이용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극한과 [ ]의 순서를 바꾼다면 어떨까?

 

 

첫 번째 식은 0.9, 0.99, 0.999, …가 다가가는 수보다 크지 않은, 즉 1보다 크지 않은 가장 큰 정수가 되므로 그 값이 1인 반면, 두 번째 식은 [0.9] = 0, [0.99] = 0, [0.999] = 0, …이 다가가는 수니까 그 값은 0이다. [0.999…]를 0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위의 두 식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기 때문이다. 일 반적으로 ‘극한값을 구한 다음의 함숫값’과 ‘함숫값을 구한 다음의 극한값’은 다르다. 이 두 값이 같을 때, 우리는 그 함수를 ‘연속함수’라고 부른다. 즉, 연속함수는 함수와 극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함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질문의 경우 f(x) = [x]라는 함수의 그래프를 생각하면, 함수 f(x)는 x가 정수일 때 언제나 불연속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ath/22